•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원제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저 |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일 : 2011.04. 15 | 페이지 : 264 쪽
    ISBN-10 : 8901121387
    ISBN-13 : 9788901121383

    리뷰수 : 1


  • 책의 주제와 요점

  • 자본주의 경제 체제인 신자유주의는 ‘열정 노동’이라는 사회 구조를 만들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불이익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구조다. 우리 사회는 열정이라는 말로 사람들에게 스펙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취업하기 위해 사회가 원하는 조건인 열정, 즉 스펙을 쌓아야만 한다. 어렵게 취업을 해도 하루 8시간 노동은 기본, 잦은 야근과 밤샘 근무에도 직장인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야근이나 밤샘 수당이 없는 것쯤은 감수해야 하며 회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열정이 부족한 사람이 된다. 이처럼 자본주의 경제 체제인 신자유주의는 ‘열정 노동’이라는 사회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많은 실업자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오늘도 사회가 말하는 열정인 스펙을 쌓고 있다.


  • 원페이지 요약

  • 1. 열정은 스펙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펙’이라는 열정이 없으면 그로 인한 불이익은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꿈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노력하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꿈이란 ‘원하는 직업’, ‘들어가고 싶은 직장’을 의미한다. 즉,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열정적으로 노력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좋은 직업,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스펙 쌓기’가 바로 이 시대의 열정이다.

    남들과 차별화된 것을 원하는 기업의 자격 요건에 맞춰 구직자들은 스펙을 쌓는다. 스펙은 학력, 취업, 승진을 위한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며 스펙이 없는 사람은 열정이 부족한 인생의 낙오자로 인식된다. 이와 같이 스펙은 열정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기업은 열정을 개인의 노동 가치관으로 간주해 노동자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면접관들은 열정을 ‘측정(測定)’한다. 결국 기업이 원하는 기준치를 넘는 스펙을 가진 자만이 ‘취업 성공’이라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열정의 ‘쓸모’이다. 자본주의는 많은 사람의 의식주를 해결할 만큼 생산력을 갖추며 성장했지만, 또 그 때문에 선택받지 못한 많은 사람이 ‘잉여(剩餘)’가 되었다.

    스펙을 쌓아 취업에 성공하고 나면 이번에는 많은 사람이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한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도약을 준비한다. 언젠가는 경영 혁신에 힘쓰는 ‘1인 기업가’로서의 나를 꿈꾸며 사람들은 자발적인 열정을 보인다. 하지만 이런 열정적인 경영 정신 뒤에는 보이지 않는 강박 관념이 존재한다. ‘나는 결코 노동자가 아니다. 내가 지금 노동자처럼 일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즉, 자신은 누군가의 명령을 받으며 시키는 대로 일하는 수동적이고 나태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자신은 능력을 키우며 인맥을 형성하고 몸값을 올려 성공과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능동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언젠가는 내 가게, 내 회사를 차릴 포부로 시간을 투자하고 저임금 노동, 고용 불안을 감수하며 노동을 견디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노동자’라는 단어가 불명예로 인식되면서 자신이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었다. 그리고 ‘나’를 상품으로 대상화해 시장에 내어놓는 ‘자기 계발’ 담론(談論)들이 생겨났다.


    2. 열정은 노동


    신자유주의는 소수를 위해 다수의 희생이 요구되는 열정 노동 현장이라는 사회구조를 형성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보이며 열악한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노동이 ‘열정 노동’이다. 신자유주의는 소수를 위해 다수의 희생이 요구되는 열정 노동의 사회구조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열정 노동인 e스포츠는 IMF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로 프로게이머(progamer)라는 새로운 직업을 양산(量産)했다. 팀 체제이면서도 철저하게 1 대 1 게임을 펼치는 이들은 정해진 숙소에서 24시간 게임 연습을 한다. e스포츠는 대기업의 자본으로 그 영역이 넓혀졌지만, 기본적인 복지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선수들의 현실이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능력을 평가받는 이들은 오로지 열정만으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 때문에 억대의 연봉을 받는 소수를 제외한 많은 선수가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영화, 공연, 연예, 스포츠 분야는 이미지라는 메시지가 자본을 통해서 대중에게 전달되는 ‘미디어’ 영역이다. 미디어 영역은 이미지 전달이 가장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영화의 경우, 효과적인 홍보를 위해 유명 배우 캐스팅에 중점을 둔다. 이때 유명 배우는 다른 배우들과 감독, 시나리오를 메시지로 전달하기 위한 대표 이미지가 된다. 그래서 전체적인 배우들의 캐스팅 비용 중 인기 주연 배우들의 비중이 높다. 이것이 소수의 출연료와 연봉이 수직 상승하는 이유다.

    이러한 비율은 점점 커지는 추세며 사회는 열정이라는 말로 다수가 소수로 이양(移讓)하는 것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미 소수 권력이 지배하는 구조 속에 자신이 그 소수에 들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 영역은 그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동족 업계의 대다수가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결국 소수를 위해 대부분의 다수가 자신을 희생하며 한 분야를 지탱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가지는 본질적 폭력성, 존재방식의 비인간성 때문이다. 사회적 제도와 규칙은 ‘사람’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어야만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


    3. 열정과 노동 사이


    열정 노동 확산은 불안정한 삶을 개인이 감수해야 하는 냉정한 사회를 만들었다.

    자기 일을 즐기는 보보스는 디지털 시대의 미국 엘리트 계층을 말한다. 보보스(보헤미안+부르주아지)는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며 개성과 창의성을 중시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오렌지족과 아이돌이 생겨났고 일본 대중문화 애호가인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퍼져 나갔다. 이들은 새로운 문화, 새로운 것에 열광하며 X세대, 혹은 신세대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열정은 본래 대중의 것이었다. 오타쿠와 마니아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으로 서로 배워가며 창작을 했다. 그러나 ‘문화 산업’과 ‘벤처 기업’의 등장과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입학이 가능해지자 문화 창작자에 대한 수요가 발생했다. 취미가 일로, 일이 취미가 되는 현상을 낳은 것이다. 그 후 신지식인상이 제정되면서 우리 사회는 한 우물을 계속 파며 자신의 분야에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키우며 격려하고 지원했다. 돈과 명예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좇는 아이들이 급속도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열정은 산업의 내부로, 그리고 노동으로 유입되었고 자본주의는 이러한 열정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과 노동력을 발견했다.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라고 말하며 열악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성실함과 근면함을 요구했다. 그리고 불합리한 처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을 반성해야 했다.

    이에 수많은 사람이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려고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세상이 되었다. 열정 노동의 확산은 IMF 이후 신자유주의를 만들어내며 국가와 자본은 사람들의 열정을 필요로 했다. 동시에 신자본주의는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요구되면서 많은 사람의 삶을 불안하게 했다.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구조는 노동 유연화 등을 통해 워커홀릭(workaholic, 일 중독자)을 양산해내거나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모두 떠안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열정이 노동 착취의 근거로 작용하게 된 배경이며 우리가 겪는 냉정한 현실이다.


    4. 열정 노동의 무력화


    열정 노동 구조로 패배자가 된 다수 노동자는 소수 승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열정을 쏟고 있다.

    노동조합의 이기주의와 노동 계급의 죽음은 강요된 것이었다. 1990년대 말 한국의 기업들이 정리 해고를 요구했을 때, 대부분 노동조합은 임금 삭감을 통한 일자리 유지를 제안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정리 해고에 생계의 위험을 느낀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노동 운동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90년대 말부터 벌어진 파업들에 대해 법원은 노동자들에게 ‘위험 회피’의 가능성을 없앴다. “정리해고나 사업 조직의 통폐합, 공기업의 민영화 등 기업의 구조 조정의 시행 여부”에 반대하는 파업은 원칙적으로 경영권에 대한 침해이므로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물론 노조가 자발적 임금 삭감 등의 교섭을 통해 얻어낸 고용 안전 협약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무력화되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연예인이나 프로게이머 같은 직업군에 기꺼이 뛰어드는 것은 그들이 ‘열정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기대했던 수준의 삶을 누릴 수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소위 ‘대박’을 기대하며 소수 무리에 들기 위한 선택이다. 열정 노동자도 노동자에 속해있지만 기업이나 회사 노동자들과의 이해관계는 다를 수 있다. 열정 노동자의 경우, 노동 유연화라든가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노동자의 반수 이상이 불안정한 상태일 때 노동이라는 집약적 개념이 무력화된다. 즉, 근로 소득 인상에 관한 파업 이외의 다른 것은 정치적인 일로 간주하는, 오로지 임금 인상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위로 보이며 시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노동자 스스로 ‘노동’이라는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점점 늘어가고 기업은 자신들이 만든 열정의 기준인 ‘스펙’을 통해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한다. 우리는 이러한 열정 노동을 만드는 구조를 비판한다. 하지만 열정적이어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는 따르려 한다. 소수 승리자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대다수의 패배자인 우리는 과연 물질적 풍요만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